본문 바로가기

소설

고독(苦獨), 남겨진 외로움 - 1 이제 여름의 초입이 아닐까 생각되는, 덥지는 않지만 끈적함이 몸에 달라붙는 6월의 어느 날, 오랜만에 귀찮은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야 뭐하냐. 오랜만에 나랑 술이나 먹자.” “뭐야 동네에 있었냐? 그럼 말을 해야지. 어딘데?” “맨날 싸게 먹던 곳이지.” “그 편의점? 알았다. 기다려봐라.” 밤 10시. 그렇게 늦지는 않은 시간이다. 내일 일을 하러 가야 해서 일찍 자려고 했지만 친구랑 조금 놀아도 되지 않을까. 그래도 가서 투덜거려야지. 이 친구에 대해 설명하자면 자주 연락을 하는 친구는 아니지만 가장 친한 친구를 꼽으라면 언제나 최우선 순위에 두는 그런 친구, 바르고 쓴 소리만 하지만 미워 할 수 없는 그런 친구, 만나면 서로 웃기지도 않는 말을 하면서 낄낄대는 그런 친구, 남들 앞에서 강한 척 .. 더보기
사람은 모르는 물건의 그저 그런 이야기 - 完 이곳은 어느 백화점 내부 고객만족센터 앞에 펼쳐진 추석 선물 세트 판매장 앞이다. 시끌벅적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캐셔들은 웃음으로 굳은 얼굴로 ‘어서오십쇼, 안녕히 가십쇼. 몇번 고객님 이쪽입니다.’ 인사를 한다. 고객들은 캐셔의 얼굴을 잘 보지는 않고 빠르게 지나갔다. 고객들은 무표정하고 무감정한 얼굴로 캐셔 앞을 지나가고 있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일만 생각하는 얼굴이다. 선반에 추석 선물 세트가 오손도손 모여있다. 아마 캐셔가 추석 선물 세트를 파는 것이 아닐까. 선반을 살펴보면, 선물 세트의 왕도인 먹거리 세트부터 목욕용품 세트까지 많은 선물 세트가 있었다. 그 중, 참치캔과 가공육 통조림이 같이 있는 세트의 참치캔이 의문을 제기하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저기 서서 우리를 팔.. 더보기
그 남자의 하루 - 5 부정적인 생각은 그의 머릿속에서 가지를 치기 시작한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끌어들이고 그것들은 점점 커져서 그의 머리를 억울함과 분노로 끈적끈적하게 만든다. 부모의 재력에 따라 태어날 때부터 인생이 정해진다는 이야기부터 사회의 부정적인 면만 모아 부르는 사회 비판적인 용어들까지, 편파적인 시각에서 본 사회의 모든 것들은 자신보다 사회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믿게 만드는 그런 트렌드에 편승하여 분노로 사회를 바라보고 거짓 된 비난 조소를 사회에 보낸다. 그의 분노는 자신이 지금 겪는 상황에까지 도달해 그의 분노를 더더욱 부채질했다. 왜 자신은 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이렇게 살아야 하는걸까, 왜 자신은 주위 사람들한테 동정을 받아야 하는걸까, 왜 자신은 ‘최선’을 다 했는데 얻은 성과가 없는 것.. 더보기
하얀 안개꽃 - 1 1. 비가 오던 10월의 어느 날. 길에서 한 여자가 웅크려 앉아 서럽게 울고 있다. 몇 시간 전까지 연인의 품에서 환하게 웃던 그 여자는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에 반쯤 넋이 나가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그저 그 남자의 마음이 왜 변했는지에 대한 의문만 가득하다. ‘오늘 같이 먹었던 음식이 마음에 안 들었나? 같이 갔던 카페가 별로였나? 아 그러고 보니 눈썹 이상하게 그려졌는데 그게 마음에 안 들었나? 오늘 옷이 이상했나? 이런 옷 싫다고 했던 거 같긴 한데. 아까 키스할 때 입 냄새가 났었나? 가글 잘했는데 역시 이 닦았어야 했었나? 그러고 보니 요새 많이 힘들다고 했는데 그 일을 좀 더 자세히 물어봤어야 했으려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지만, 그녀는 .. 더보기
그 남자의 하루 - 4 그가 도서관에 들어가서 맨 처음 하는 일은 자신이 빌린 책을 반납하는 것이다. 열람실은 2층과 3층에 있고 책의 반납은 책이 원래 있던 층의 열람실에서 해야 한다. 층과 층 사이를 엘리베이터를 타도 되고 계단을 이용해도 되지만 그는 여러 매체에서 영향을 받아 건강을 위해 계단을 이용한다. 계단은 총 34개로 중간 층까지 가기 위해 17계단, 그리고 나머지를 올라가기 위해 17계단을 걸어야 한다. 문득, 그는 계단 사이의 층을 보며 그곳이 붕 떠있는 자신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2층도 아니고 3층도 아닌 그곳. 그저 오르는 방향을 바꾸기 위해 존재하는 그곳. 효율적으로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곳. 과거 재미있게 읽었던 판타지 소설에서는 9와 3/4승강장이라는 환상의 공간을 통해 신비의.. 더보기
섬 - 3 3. 다음 날 아침, 재혁은 눈이 조금 늦은 시간에 떠졌다. 어제 새벽 4시에 깨서 그렇다고 재혁은 생각했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보니 오전 10시. 방에 있는 한 뼘 남짓한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시간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방안 전체을 밝히지 못한 채 자신이 비추는 자리만 맴돌았다. 급작스럽게 느껴지는 갈증을 참지 못하고 재혁은 방은 나섰다. 방문을 열고 나가니 거실에서 재혁의 어머니가 구부정한 모습으로 마늘 대를 자르고 계셨다. 날이 잘 선 가위로 서걱서걱 마늘 대를 자르는 어머니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니 갑자기 어머니가 아닌 다른 낯선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어머니 저 일어났어요.” “아고 우리 아들 일어났네잉. 배가 고롱거리제? 잠만 기다리라. 음마가 빨리 밥 맹글러줄게.” 아들을 보고 만면을 .. 더보기
섬 - 2 2. 재혁이 있는 집은 동네와 조금 거리가 있는 산 중턱에 지어진 집이다.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듣기로는 자신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 산으로 들어간 게 시초라고 들었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져 산다는 게 무척 이나 멋지고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선조들이 사회에 어울리지 못해 이런 섬의 산골짜기에 들어온 게 아닌가 의심을 하게 된다. 하필 사는 사람도 적은 이 서안에서 산 중턱까지 들어오다니 선조 님의 생각을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산 중턱에서는 사람들과 교류뿐만 아니라 읍내에 나가기도 힘들고 장을 보는 것도 힘들다. 그나마 최근에는 국가에서 사회 무슨 사업을 한다고 물, 전기, 도로가 깔려서 망정이지 중고등학교 때는 매일매일 물지.. 더보기
그 남자의 하루 - 3 그는 도서관에 들어가기 전, 항상 하늘을 보며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어린 날의 그는 어떠한 걱정도 하지 않고 즐겁게 삶을 살아왔다. 생각해보면 근심도 걱정도 없고 어떠한 의무도 책임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부터 끝이 났다. 국영수사과를 가르치는, 지옥같은 학원에서의 하루하루는 어렸던 그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쳇바퀴 굴리듯이 하루하루를 살아왔던 것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아이처럼 투정부리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았다. 그런 환경에서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현재에 바라보지 않게되었다. 자신은 더 나은 미래만을 생각해야만 하고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렇게.. 더보기
섬 - 1 1. '담배나 한 대 필까….' 달이 좌초되기 전 새벽 4시. 여름이지만 겨울 초입에 들어가는 듯 양 바람은 시퍼렇게 몰아친다. 장지문을 열고 추위에 나도 모르게 '하….'하고 입김을 내뱉어 본다. 입김은 몽글몽글 뭉치다 퍼지다를 반복하며 하늘로 날아 올라간다. 재혁은 코를 한번 훔친 뒤,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이끌고 나가다 문득 라이터를 가지고 나오지 않음을 알았다.'젠장 짜증 나네.' 허공에 흩어질 욕을 속으로 됫박을 날리고 나니 앓지도 않았던 속이 좀 후련해졌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베게 머리맡에 뒀던 라이터를 주섬주섬 찾아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새 몸이 추위에 적응했는지는 전처럼 덜덜 떨리지 않았다. 도시에서 살던 습성이 있어서 그냥 마당에서 피워도 좋을 담배를 대문 밖으로 나가서 피려고 발걸음을.. 더보기
그 남자의 하루 - 2 해가 정수리에 걸리는 시간. 그는 도서관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그의 집에서 도서관까지 걸어가는 길은 그다지 멀지 않다. 횡단보도를 3번 육교를 1번 얕은 언덕을 2번 넘으면 될 뿐이다. 그의 삶, 하루의 중간은 점심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소란스럽지만 그의 주위는 고요할 뿐이다.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점심의 시작은 그와 동떨어져있다. 그는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길을 스쳐가며 많은 사람들과 마주 할 수 있지만 그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는 매일 같은 길 위에서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들에게 있어 이 삶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자신과 달리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 또한 저렇게 될 수 있을 것인가, 오늘도 답은 그에게 도달하지 못한 채 허공에서 맴돈다. 길을 걸어 도착한 도서관은 넘을 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