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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섬

섬 - 3




3.




다음 날 아침, 재혁은 눈이 조금 늦은 시간에 떠졌다. 어제 새벽 4시에 깨서 그렇다고 재혁은 생각했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보니 오전 10시. 방에 있는 한 뼘 남짓한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시간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방안 전체을 밝히지 못한 채 자신이 비추는 자리만 맴돌았다. 급작스럽게 느껴지는 갈증을 참지 못하고 재혁은 방은 나섰다. 방문을 열고 나가니 거실에서 재혁의 어머니가 구부정한 모습으로 마늘 대를 자르고 계셨다. 날이 잘 선 가위로 서걱서걱 마늘 대를 자르는 어머니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니 갑자기 어머니가 아닌 다른 낯선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어머니 저 일어났어요.”

“아고 우리 아들 일어났네잉. 배가 고롱거리제? 잠만 기다리라. 음마가 빨리 밥 맹글러줄게.”

아들을 보고 만면을 화사하게 띄운 어머니가 아들에게 웃어줬다. 아까와의 괴리감으로 재혁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재혁의 어머니는 손을 탁탁 털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마당에 나가 구부정한 모습으로 손을 씻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진 재혁은 도망치듯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냉장고는 부엌 구석에 있었고 이윽고 재혁은 냉장고 앞에 섰다. 작년 이맘때쯤, 회사에서 보너스를 받고 본가에 냉장고를 사서 보냈던 것이 생각났다. 마룻바닥을 밟으면 삐걱 거릴 만큼 낡은 부엌에 냉장고만 새것이라 냉장고는 주변과 어울리지 못했다. 냉장고 문을 여니 옛날 주스를 담던 유리병에 차가운 보리차가 들어있었다. 쇠로 된 뚜껑을 돌려서 열고 컵도 쓰지 않은 채 병에 입을 대고 보리차를 벌컥벌컥 마셨다. 보리 색의 청량감이 목을 타고 들어와 온몸에 퍼지니 다시 고등학생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들어와서 물을 벌컥벌컥 마셨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십 년도 더 된 고등학교 때와 지금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니 눈앞에 보이는 냉장고가 주위와 조금 어울려진 느낌이 들었다. 물병을 냉장고에 넣었을 때 어머니가 부엌에 들어와 자신을 쳐다보고 있음을 알아챘다.

“아휴 아들, 뭔 놈의 물을 그렇게 마셔잉. 그러다 체하것다.”

“괜찮아요. 뭐 별일 있겠어요.”

“그라도… 글고본께 아들 도시에 산께 서울말씨쓰네잉. 서울사람 다 맹그러졌네.”

“도시에서는 사투리 쓴다고 촌놈으로 봐요.”

“아니 시방 그려? 사람들 신기허네… 으째 이게 사투리로 들린당가?”

“저도 모르죠.”


어머니는 ‘거 신기허네…’를 반복하면서 재혁을 위해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2016/07/05 - [장편/섬] - 섬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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