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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짧은 단편

사람은 모르는 물건의 그저 그런 이야기 - 完




이곳은 어느 백화점 내부 고객만족센터 앞에 펼쳐진 추석 선물 세트 판매장 앞이다. 시끌벅적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캐셔들은 웃음으로 굳은 얼굴로 ‘어서오십쇼, 안녕히 가십쇼. 몇번 고객님 이쪽입니다.’ 인사를 한다. 고객들은 캐셔의 얼굴을 잘 보지는 않고 빠르게 지나갔다. 고객들은 무표정하고 무감정한 얼굴로 캐셔 앞을 지나가고 있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일만 생각하는 얼굴이다.

선반에 추석 선물 세트가 오손도손 모여있다. 아마 캐셔가 추석 선물 세트를 파는 것이 아닐까. 선반을 살펴보면, 선물 세트의 왕도인 먹거리 세트부터 목욕용품 세트까지 많은 선물 세트가 있었다. 그 중, 참치캔과 가공육 통조림이 같이 있는 세트의 참치캔이 의문을 제기하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저기 서서 우리를 팔아주는 사람들 참 힘들겠어. 사람들이 무시하고 그냥 지나가잖아. 왜 다들 저렇게 그냥 지나가는 걸까?”


선물 세트의 참치캔은 말했다.


“웃는 얼굴로 ‘수고하세요’라고 말해도 될텐데 왜 다들 저렇게 지나가는거지?”

“글쎄… 그냥 그들만의 이유가 있는 거겠지.”

“가공육 통조림아,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들에게 이유가 있는걸까?”

“그럼 뭐 별달리 할 말이 있을까. 각자는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지.”

“아니 그래도 이상하잖아. 저기 서서 팔고있는 사람은 저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데 왜 고객이란 사람은 한 명도 따뜻한 인사를 건네지 않는걸까?”

“그러니까 그건 각자의 사정이겠지. 저기 물건 파는 사람도 팔고싶어 우릴 팔겠니. 그게 일이니까 그렇지.”


참치캔은 명백한 문제가 보이는데 가공육 통조림이 계속해서 말을 아끼기만 하는 행태가 답답했다.


“아니 그래도 저건 문제가 있어. 서로에게 친절해야 하잖아. 인사를 잘 하는 행위는 인간 사회에서 필요하다고.”

“참치캔아, 그래 뭐 너의 생각이 그렇다는 건 잘 알았어. 인간 사회에서는 저게 보통일지도 모르잖아. 우린 그저 통조림일 뿐이야. 그리고 내 생각은 ‘그럴수도 있다.’이지.”

“가공육 통조림아, 넌 저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니? 저들은 같은 인간인데 왜 누구는 계속 인사를 하고 누구는 그걸 받기만 한다는 말인데. 저기에는 차별이 존재해.”

“참치캔아, 네가 하는 말은 구구절절 맞아. 그런데 그건 너의 가치관이고 너의 생각일 뿐이야. 너의 생각은 복잡한 인간 사회에 정확하게 적용되지는 않을 수도 있어. 다시 말하지만 너의 말이 틀렸다는 건 아니야. 중요한 건 너의 의견과 다르지만 인간 사회에는 저걸 용인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말이지.”


참치캔의 생각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언제라도 차별은 옳지 않다. 이것은 인간 사회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물건 사회에서도 똑같다. 그런데 왜 가공육 통조림은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개물(個物)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상황은 자신의 생각이 옳고 사회는 그것을 지향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공육 통조림의 방관자 적인 생각을 바꿔보기로 결심했다.


“아니 가공육 통조림아 이상한걸 이상하다고 말하는데 왜 이해하지 못하니? 그럼 다르게 물어보자. 우리 옆에 올리브유 세트가 있는데 우리가 저들과 이야기하고 있지 않지. 이건 옳은 걸까?”

“우리의 대화에 올리브유가 낄 필요가 있었나.”

“아니 올리브유는 우리와 말을 하고 싶은데 우리가 말을 걸지 않아서 대화를 못할지도 모르잖아?”

“대화를 하고 싶으면 먼저 말을 걸 수도 있지. 왜 꼭 우리가 먼저 걸어야 하는 건데?”


이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올리브유는 지금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은 가만히 있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함부로 하는 저들에게 무엇인가 한 마디 하려고 말을 꺼냈다.


“야 참치캔, 가공육 통조림. 나 다 듣고 있거든? 나는 좀 빼주지 않을래?”

하지만 올리브유의 소리는 허공으로 퍼져나가기만 할 뿐, 참치캔과 가공육 통조림은 그들만의 좁은 세계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니 가공육 통조림아 우린 모두를 배려해야해. 특히 올리브유는 우리와 같은 세트에 속하지 않았으니 더더욱. 올리브유가 우리랑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린 쟤를 더 배려해야 해.”

“참치캔아 왜 올리브유를 끌어들이니. 올리브유도 자신만의 생각이 있고 그 의견을 말 할 수 있어. 우린 올리브유를 존중해야 해.”

“야 좀 들어봐. 너희 둘 다 왜 날 끌어들이고 난리야.”


올리브유가 다시 한 번 말했지만 역시나 옆 세트에 전해지지 않았다.


“가공육 통조림 너의 말도 옳다고 생각해. 하지만 계속 내가 말하는 부분은 ‘올리브유는 우리와 같이 있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배려를 해야한다.’는 말이지. 만약 우리가 배려하지 않는다면 올리브유는 우리와 다른 세트에 있기 때문에 차별 받는다고 느낄 수 있어.”

“그러니까 니들 왜 날 가지고 그러냐니까.”

“그래 참치캔아. 누구라도 배려하는건 좋지. 하지만 우린 올리브유의 주체성과 의견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 네가 하는 행동은 그냥 올리브유를 무시하는 행동이야. 그리고 지금 대화 진짜 답답하다. 내 생각과 너의 생각은 다를 뿐인데 왜 인정해주지 않니.”


가공육 통조림은 점점 짜증이 났다. 참치캔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대화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무시하면 더 귀찮아지기에 대화를 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대화하지 않아 귀찮아지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란 생각에 지금의 상황이 후회됐다. 대화가 아니고 서로 다른 이야기만 주구장창 하는 상황에 스트레스로 열받아 자신의 내용물이 익어버릴 것 같았다. 가공육 통조림은 차라리 벽과 대화를 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그러나 가공육 통조림의 말은 참치캔에게 불을 붙였을 뿐, 참치캔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 같이 생각해보자. 난 유명 기업에서 만들어진 참치캔이야. 사람들은 날 잘 알고 인지도가 높아서 많이 팔려. 그에 비해 너는 나와 같은 기업에서 만들었지만 시장 인지도는 아직 형성되지 않은 가공육 통조림이지. 사람들은 널 많이 사지 않아. 판매자는 널 잘 팔기 위해 나를 같은 세트에 넣어 놓았지. 가공육 통조림 너를 팔게 하기 위한 전략이야.”

“그래 맞는 이야기지. 그런데 그 말이 왜 나온거야? 자기자랑?”

“참고 잘 들어봐. 만약 내가 없다면 넌 인지도가 낮아 잘 팔리지 않을 거야. 그렇기 때문에 판매자가 너랑 나를 같이 넣어 놓은거야. 그러니까 넌 나한테 감사하게 생각해야 해. 내가 있어서 너의 가치가 올라갔거든.”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다. 참치캔아 네가 잘났다는 건 잘 알았어.”

“흥분하지 말아줘. 사실만 이야기하고 있는거야. 자 저기 다시 저길 보자. 네가 나 때문에 팔리는 것처럼 저 고객들이 편리하게 물건을 사려면 저기 있는 캐셔들이 필요해. 그런데 왜 저 고객이라는 사람들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걸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


가공육 통조림은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비유 같지도 않은 말을 꺼내고 저렇게 의기양양하게 말을 하는 참치캔에게 더 이상 대꾸도 하기 싫었지만 가공육 통조림은 자존심 때문에 계속해서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내가 너한테 감사해야 한다는 말이니? 그리고 너랑 같이 묶인 건 판매자의 생각이 맞아. 그런데 구매자는 너를 보고 사는지 나를 보고 사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그리고 그냥 ‘아 참치랑 가공육 필요하니까’라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 많으니까 우릴 묶어뒀을지도 모르는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알아. 하지만 이건 누가 보더라도 내 말이 맞아.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백 번 양보해서 너  때문에 내가 팔린다고 해도 그거랑 고객-판매자 관계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거야? 그냥 고객-판매자는 수요-공급 관계이고 우리 관계는 소비자 수요가 참치캔과 가공육 통조림을 같이 묶어 놓으면 잘 팔리니까 생긴 관계잖아.”

“그렇게 보면 안돼. 그건 그냥 네가 보고 싶은 대로 본 거야. 본질을 헷갈리면 안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상하 관계가 있으면 안된다는 이야기와 인간 사회의 잘못된 인식에 대해 말을 하는데 왜 논점을 흐리는지 모르겠다.”

“와 정말 미치겠네. 네 말은 판매하려는 사람이 물건을 더 잘 팔려고 숙이고 들어가는 게 잘못되었다는 말이지?”

“아니 숙이는 건 자유지. 하지만 고객이 판매자를 무시하는 건 잘못되었다는 말이야.”

“아 그리고 인사를 안 받아 주는 게 무시하는 거라고 말하는데 그건 개인의 자유 아니야? 누구라도인사하면 무조건 받아줘야 해? 모르는 사람이 인사해도? 넌 모르는 물건이 너한테 인사하면 다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응 맞아. 난 그렇게 생각해. 혹시 아니라고 생각하니? 그럼 좀 충격인데.”

“와 진짜 답답하다. 그냥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면 안되는 거야?”


잠잠히 듣고 있던 올리브유는 누구의 말이 맞는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역시 둘 다 개물(個物)의 관점에서 맞는 소리를 하고 있어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저 계속해서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왜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 못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누구나 존중 받아야 한다는 명제는 참이야. 그러니 이건 틀린 거지. 물론 다른 건 다른 거지만 이건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거야.”

“그래. 우리 잘나신 참치캔님이 하시는 말씀인데 제가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그냥 그렇게 사시면 될 거에요.”

“계속 언성 높이다가 논리에서 밀리니까 비꼬는 거야? 거참 이상하네. 그냥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하다 말을 하면 될 것을 이렇게 하면 용서가 안되는데.”

“참치캔아 난 용서를 바라지 않아. 왜냐하면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거든. 그냥 너랑 나는 다르다고 생각해. 내 생각을 인정해주지 않는 너의 행위는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네가 사과를 하지 않으니 용서가 안되네.”

“이젠 내가 용서를 해야 한다고 말하네. 너 진짜 이상하다.”

“아니 그냥 좀 놔두라고! 서로 생각이 다른 걸 뭘 어쩌라는 거야. 계속해서 짜증 나게 하지 말고 조용히 있자. 서로 열 내봐야 좋을 게 뭐가 있어. 다름을 인정하고 조용히 살자고.”

“뭐? 정말 실망이다. 그냥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되는 걸 뭐? 누구나 존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고객이 판매자를 무시하는 건 옳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하……. 알았다. 미안하고 그만하자.”


가공육 통조림은 더 이상 말을 할 힘이 없어졌다. 말이 통하면 토론이든 논쟁이든 할 테지만

말을 해도 이해를 못하니 더 대화 할 자신이 없어 포기하기로 했다. 애초에 자신의 생각만 맞다는 전제를 깔고 말을 하는 점이 답답했다. 그래서 앞 뚜껑으로 듣고 뒤 뚜껑으로 흘리는 전략을 택했다.


“진짜 실망……… 다양한 관점이 아니라 틀린 생각을 고치는…… 계속 이야기 하는데…… 너의 생각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

“아니 지금 너의 태도도……. 내가 말 하는 건 사회의 정의…….. 이런 점이 계속 되면 사회가 무너지고…….. 너의 생각도……... “

“......”

“도대체가 요새 물건도 사람도…… 위 아래도 없고…… 진짜 바꿔야 하는데……”

“......”

“아니 진짜……. 그런데 너 내 말 듣고 있니?”

“......”

“가공육 통조림 너 내 말 안 듣고 있구나? 도대체 왜 무시를 하는 거지? 결국 논리에서 밀리니까 아무 말도 안 하잖아. 그냥 인정하면 될 것을 왜 버티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잘나신 참치캔님 알겠으니까 우리 조용히 있죠.”

“그럼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내가 왜!”


서로 소리를 지르며 싸움이 시작되자 주변 선물 세트의 물건들이 둘 다 조용히 하라고 말을 했지만 그들의 말은 참치캔, 가공육 통조림에게 들리지 않았고 시끄러운 환경을 잠재우기 위해 물건들은 서로 누구의 말이 맞는지 토론을 했다. 결국 그들도 참치캔 파, 가공육 통조림 파로 나뉘어 싸우기 시작했고 점점 더 시끄러워졌다. 그 속에서 올리브유는 계속해서 누구의 말이 맞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외부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아이고 언니. 이 세트 얼마에요?”

“39800원이에요. 한 개만 사실건가요? 10개 사시면 2개 더 드리는 행사도 하고 있는데.”

“어머 그래요? 음…. 그럼 여기 있는 하나만 일단 가져가고 나머지는 택배로 보내주실 수 있나요?”

“네 가능해요. 그럼 결제는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카드로 할게요. 3개월 무이자 되죠?”

“네 고객님 됩니다. 그럼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이건 제가 들고 갈게요.”


캐셔가 참치캔과 가공육 통조림이 든 세트를 들고 가자 시끄러웠던 물건들의 토론도 점차 조용해졌다. 결국 그들은 논쟁이 부질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까. 아니면 토론해봐야 부질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물건들은 조용해졌다. 조용해진 그곳에 올리브유가 한마디를 던졌다.


“내 생각에는 둘 다 맞는 거 같아. 안 그래? 그러니 싸울 이유가 없어.”


올리브유가 끼얹은 찬물을 무시하고 물건들은 각자 하고 싶은 일들을 했다. 그렇게 물건은 그들만의 토론을 했고 사람들은 물건의 토론 내용, 아니 토론을 한 사실조차 모른 채 일상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