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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하얀 안개꽃

하얀 안개꽃 - 1



1.


비가 오던 10월의 어느 날. 길에서 한 여자가 웅크려 앉아 서럽게 울고 있다. 몇 시간 전까지 연인의 품에서 환하게 웃던 그 여자는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에 반쯤 넋이 나가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그저 그 남자의 마음이 왜 변했는지에 대한 의문만 가득하다.


‘오늘 같이 먹었던 음식이 마음에 안 들었나? 같이 갔던 카페가 별로였나? 아 그러고 보니 눈썹 이상하게 그려졌는데 그게 마음에 안 들었나? 오늘 옷이 이상했나? 이런 옷 싫다고 했던 거 같긴 한데. 아까 키스할 때 입 냄새가 났었나? 가글 잘했는데 역시 이 닦았어야 했었나? 그러고 보니 요새 많이 힘들다고 했는데 그 일을 좀 더 자세히 물어봤어야 했으려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지만, 그녀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계속해서 울고 있다. 그녀가 느끼기에 이번 연애에서는 이별의 징조는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순간에 그녀는 그에게 헌신했고, 다정했으며 자신보다 그를 더 우선시했었다. 그 어떤 일, 약속보다 그와 함께하는 순간을 우선시했고 그녀의 인생을 함께할 반려라고 반쪽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녀에게 달콤한 말을 속삭였고 그녀는 바보처럼 그 말을 믿었다.


세 달 전, 그와의 첫 키스가 기억났다. 서로에게 사랑의 풋풋함이 느껴져서 즐거웠다. 그에게 자신의 첫 키스를 주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두 달 전, 처음으로 같이 먼 곳으로 여행을 갔다. 비가 와서 별로 돌아다니지는 못했지만, 그와 펜션에서 보낸 그 1박 2일은 신혼부부가 된 것처럼 즐거웠다. 밤에 그는 그녀를 소중하게 생각하여 잘 때 꼬옥 안아주기만 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했다. 저번 달, 처음으로 같이 밤을 보냈을 때, 자신의 처음을 그와 함께 보낸다는 사실에 너무나 즐거웠고 그 밤 또한 잠깐의 고통을 제외하면 상상처럼 황홀했다. 그는 처음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그 후 그는 항상 그녀의 몸을 요구했고 그녀는 그의 욕구에 항상 응답했다.


이런 결과를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이런 일을 겪기 위해 그랬던 것이 아니다. 이런 취급, 대접을 받기 위해 헌신했던 것이 아니다. 겨우 이런 결말을 감내하기 위해 그런 시간을 보냈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들어 다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의 전화가 꺼져있어…….’


도대체 왜 핸드폰을 껐을까. 그렇게까지 아무런 설명도 하기가 싫은 걸까. 그는 도대체 왜 떠나갔을까. 그녀의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궁금증만 쌓여갔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젖어가는 옷의 무게를 느끼며 그녀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