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편/섬

섬 - 1



1.


'담배나 한 대 필까….'

달이 좌초되기 전 새벽 4시. 여름이지만 겨울 초입에 들어가는 듯 양 바람은 시퍼렇게 몰아친다. 장지문을 열고 추위에 나도 모르게 '하….'하고 입김을 내뱉어 본다. 입김은 몽글몽글 뭉치다 퍼지다를 반복하며 하늘로 날아 올라간다. 재혁은 코를 한번 훔친 뒤,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이끌고 나가다 문득 라이터를 가지고 나오지 않음을 알았다.

'젠장 짜증 나네.'

허공에 흩어질 욕을 속으로 됫박을 날리고 나니 앓지도 않았던 속이 좀 후련해졌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베게 머리맡에 뒀던 라이터를 주섬주섬 찾아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새 몸이 추위에 적응했는지는 전처럼 덜덜 떨리지 않았다. 도시에서 살던 습성이 있어서 그냥 마당에서 피워도 좋을 담배를 대문 밖으로 나가서 피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대문 가까이 가니 깜깜한 밤중인데도 아스러지는 달빛을 받아 거뭇거뭇 대문의 형체가 보였다. 이 양철제 문은 오래되고 낡아서 페인트가 여기저기 벗겨져 있고 손잡이도 덜렁거리지만 태어나서 20년 동안 봤던 익숙함에 나도 모르게 안심하고 문을 연다.

'끼이이이익'

기름칠이 잘 되어있지 않았던 양철 문은 까무러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도시라면 당장에 인터폰이 울릴 만큼 큰 소리겠지만, 이곳은 섬, 재혁이 태어나고 자라왔던 서안이라는 섬이다. 몇몇은 다른 일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어업에 종사하는 섬이라는 곳이다.

섬의 새벽 4시는 그렇게 어두운 밤중은 아니다. 이제 출항준비를 하고 나가려는 배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철 이 시간은 배들이 낚시꾼들이 돔 낚시를 위해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시간이라 더더욱 밝은 느낌이 든다.

대문 한 발자국 안과 밖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한 재혁이었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일회용 라이터를 켰지만, 비린내가 나는 쿰쿰한 바닷바람이 라이터 불꽃을 희롱하느라 라이터 불은 담배 끝에 붙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담배 하나 마음대로 피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서러워져서 라이터의 부싯돌을 다시 튀기고 튀겨서 겨우 불을 붙였다.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이니 세상이 빙글빙글 돌면서 몸에 니코틴이 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도시에서는 하루 한두 개비만 피우던 담배지만 이곳에 오니 하루 반 갑씩 피게 되었다. 아무래도 무료하고 따분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재혁은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왜 자신이 새벽 4시에 깨게 되었나 생각하였지만 재혁은 결론을 얻지 못했다.

'오늘은 모기도 없었고 덥지도 않았는데….'

생각해봐야 결론이 나지 않으니 재혁은 생각하는 걸 포기하고 담배에 집중하기로 했다. 처음 한 모금은 좋았지만 이후 한 모금 한 모금이 바닷바람과 섞여 점점 눅진눅진하고 끈적해져 갔다. 입안의 텁텁함을 못 이기고 재혁은 양철 문에 아직 빨갛게 타오르는 이제 절반쯤 빨았던 담배를 짓이겨 담뱃불을 껐다. 주섬주섬 꽁초를 주머니에 집에 넣고 달이 바닷가에 내려온 게 아닐까 착각을 할 만큼 밝은 바닷가를 내려다봤다.





2016/07/08 - [장편/섬] - 섬 - 2


'장편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섬 - 3  (0) 2016.07.09
섬 - 2  (0) 2016.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