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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생각

현재 고등학생들이 겪는 교육과정에 대한 소고



 오늘 길을 걷다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사람과 나이 지긋하신 분이 이야기를 하는데 학생이 좀 횡설수설 했었던 것 같다. 그러자 나이드신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요새 애들은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도 많은데 왜 이렇게 멍청한지 모르겠어."


 28살은 요새 애들인건가 아닌가도 궁금했지만 역시 제일 궁금한 것은 '공부는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왜 저런 이야기가 나온 것일까?' 라는 질문이었다.

 난 구 7차 교육과정 세대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것이 필수가 된 첫번째 세대이고 동시에 수능 등급제를 제일 먼저 맛본 세대이다. 내가 겪었던 필수 교육과정에서 날 가르치던 선생님들은 '내가 지금 고등학교로 돌아가서 다시 수능친다면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라는 말을 항상 하셨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해서 교수님들도 그것과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선생님들과 교수님들, 한 분야에서 뛰어나시고 동시에 배울점이 있어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에 서 있는 분들이다. 그런데 저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내가 하는 것을 보고, 내가 성취 했던 것을 보고 '지금은 내가 할 수 있을까? 아니 못해.'라고 말을 했었다.

 구 7차 교육과정이 어땠는지 생각을 해봤다. 내가 배웠던 공부는 문/이과 특화형 공부였고 그것에 맞는 교육과정을 통해 각자의 시험을 치뤘었다. 문과는 수학을 조금 배우지만 여러 사회의 영역을 공부했고, 이과는 사회 영역을 많이 배우지 않았지만 더 높은 수준의 수학을 배웠다. 두 가지는 각각 특화되어 있었고 각각은 의미가 있었다. 각자의 꿈과 생각을 쫓아 문/이과를 선택했었다. 꿈과 희망이 넘쳐보이게 말했지만 사실 꽤나 고생했었다. 하루 공부시간은 15시간정도로 정말 밥먹고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이 거의 공부만 했었다. 그렇게 공부해서 겨우 내가 만족할 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 때도 '왜 내가 내 꿈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문과 공부를 하느라 시간을 뺏겨야하지?'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멍청한 소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 생각하고 꿈꿨던 것에 좀 더 집중하고 싶었는데 문과 공부를 하느라 하지 못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고등학생들은 어떤 공부를 하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지금의 공부는 문/이과의 구분이 '과학탐구영역을 선택하는가, 사회탐구영역을 선택하는가.'로 갈린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정부는 2005년도 대학수학능력평가부터 문/이과가 사라졌다고 말을 했지만 실상은 계속해서 과 나누기가 있었다. 수학능력평가가 구분되서 나왔고 대학도 그것을 기준으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실정을 살펴보면 사실상 문/이과의 경계가 없다. 이 부분은 수능에서 영역 선택제를 도입했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지금 고등학생들은 교육과정의 모든 지식을 배우고 난 뒤, 자신이 잘 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고 집중해서 공부해야만 하게 된 것이다.

 학생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학업의 성취? 원만한 대인관계 형성? 꿈을 좇는 자세? 바른 길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 모두다 학생에게 중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학생이 제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학업의 성취'이다. 그것도 단순한 성취가 아니라 '타인과 경쟁하여 그들보다 높은 위치에 올라서는 학업의 성취'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의 가치는 대부분 성적으로 평가받게 된다. 이런 사회적, 문화적 현상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학생 개인이 그것을 바꿀 힘은 없으므로 대부분 순종하고 따라 매일 열심히 공부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고등학생에게 제시하는 공부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아무리 생각해봐도 단순히 암기를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다. 내가 다니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내가 했던 공부가 그런 것들이었고 지금의 평가 방법은 예전과 비교해봤을 때 바뀌지 않았다. 난 15시간 공부하고 만족 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의 교육과정에서 공부를 한다면? 15시간도 부족할 것이다. 왜냐하면 암기는 시간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정말 머리가 좋거나 암기력이 뛰어나다면 고생을 하지 않겠지만 평범한 학생은 계속해서 외우지 못하는 현실에 고통받아야 한다. 나 또한 평범했고 그로인해 고통받았었다. 때문에 나 또한 내 은사님들이 말하셨던 것처럼 지금 교육과정에 대해 말해보자면 '난 저렇게 못해.'.

 다른 세대가 밟아왔던 교육과정과 비교해 봤을 때, 지금의 학생들은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식이 많다고 하여 그것의 잘 활용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보경제학이라는 책에서 맥도너는 데이터, 정보, 지식, 지혜에 대해 각각 단순한 사실의 나열, 의미있는 데이터, 가치있는 정보, 패턴화된 지식이라고 말을 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가공이 되는 형태이다. 데이터가 원재료라면 정보는 1차 가공품, 지식은 2차 가공품, 지혜는 최종 가공품인 것이다. 마트 같은 곳에서 물건을 살 때, 우리는 가공이 많이 되면 될수록 가치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고있다. 즉, 데이터를 지혜로 바꿀수록 가치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교육은 어떤 단계에 들어가는 것일까? 아마 정보 단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학생들이 접하게 되는 수많은 교육 내용들은 1차적으로 법, 교육분야 전문가, 트렌드를 따라 결정된다. 데이터가 1차 가공되어 정보가 된 것이다. 학교에서는 이것들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시험을 본다. 시험이라는 것은 배운 정보를 활용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2차 가공에 속한다. 즉, 학생들 머리속에는 많은 양의 지식이 저장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교육과정의 결과이다.

 그렇다면 3차 가공품인 지혜를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까? 이것은 정말 학생 개인에게 달려있다. '수학능력평가를 3차 가공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은 3차 가공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학에서 원하는 면접과 논술이 3차 가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면접과 논술에서 자신이 배우고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것을 토대로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글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어르신께서 학생에게 멍청하다는 말을 한 것은 아마 학생에게 지식이 아닌 지혜를 요구했기 때문에 발생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학생들은 자신의 가치가 지식에서만 나온다고 믿고 있고 또 그것을 가공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지혜로 바꾸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욕할수는 없다. 그저 시스템이 그렇게 짜여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학생과 학교가 모두 만족 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 나와 학생들이 학업 이외의 활동들을 할 수 있고, 자신들의 지식을 지혜로 바꿀 기회를 얻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p.s. 개인의 생각입니다.





REF.

경기도 도서관 정보야 놀자! 페이지 (http://www.golibrary.go.kr/storage/newsletter/201403/librarian.html)

NCIC 국가교육과정 자료실 

(http://www.ncic.go.kr/mobile.dwn.ogf.inventoryList.do)

위키피디아 - 7차 교육과정

(https://ko.wikipedia.org/wiki/7%EC%B0%A8_%EA%B5%90%EC%9C%A1%EA%B3%BC%EC%A0%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