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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생각

이상향을 찾아서.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에 대한 소고. (영화 '이퀼리브리엄'을 보고)


 영화 '이퀼리브리엄'을 보다가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영화는 제 3차 대전 후, 인류가 격감하여 남은 인원을 모아 통인 정부를 세우고 정부의 최고 지도자인 '신부(Father)'는 국민에게 프로지움이라는 약을 투여하여 인간적 감정을 없앤다. 이유는 인간의 감정이 제 3차 대전을 일으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가적 통제 아래 국민들은 지속적으로 프로지움을 복용하게 되고 예술품과 같은 인간적인 감정을 일으킬 수 있는 'EC-10물품'을 국가가 철저히 제거하여 사회를 항구적으로 유지한다. 물론 주인공이 사회를 다 깨부신다.

 영화를 보며 계속해서 '어떤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인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모두가 만족하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라는건, 유토피아라 회자되는 사회라는 것은 존재 할 수 있을까? 소설이라면 '유토피아'라는 토마스 모어가 쓴 책이 있다. 작가가 생각하기에 유토피아에서는 모두가 행복하다고 적어놨다. 조금 설명해보자면 유토피아는 매우 부유한 국가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은 굉장히 합리적이라 쓸데없는 놀이를 하지 않고 일을 하고 남은 여가 시간은 학문을 배우거나 연구를 한다. 귀금속이랑 보석으로 노예를 결박할 사슬을 만들고 아기들 장남감으로 준다. 현시대의 대한민국으로 본다면 이해하기 힘들다. 계급제가 없으니 노예도 없고 귀금속은 높은 가치를 가지고 거래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가 시간동안 공부하거나 연구같은 생산활동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 돈을 소비를 하면서 여가를 보낸다. 


 작가는 저곳을 유토피아라고 소개했지만 내가 저곳에 간다면 별로 행복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몇몇은 좋아하겠지만 대부분이 싫어하는 이유는 우리가 자라온 사회와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작가가 살아온 삶은 공부와 연구를 하며 금욕적으로 사는 것이 '옳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혹은 저런 일들이 '재밌고 행복'했을 수도 있다.

 멋진 신세계라는 소설이 있다. 올더스 헉슬리가 발표한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내용을 조금 써보자면 사람들은 성관계는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추잡한 짓이라고 생각하고 소마라는 마약을 투여하여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과 안정감을 느낀다. 재미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최고의 행복과 안정감을 느끼지만 작가는 이곳을 '디스토피아'라고 했다. 디스토피아에 대한 느낌이 잘 안 온다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보자. 1984에서는 빅 브라더가 모든 것들을 통제하여 사회가 유기체처럼 움직이게 한다. 우민화 정책과 신어(新語)같은 것들을 통해 사람들이 빅 브라더의 말을 무조건 따르게 한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둘 다 살펴봤다. 이제 감이 오지 않는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는 다르지만 같다. 일단,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행위가 옳다고 믿고 모두 같은 생각을 한다. 유토피아에서는 사회적 합의와 통념을 통해 옳다고 믿었고 디스토피아에서는 사회가 정한 지침을 무조건 따르는 방향으로 믿는다. 그리고 두 사회 다 국민을 위해 아주 정확하고 공정한 분배가 일어날 수 있게 한다. 일에 대한 보상도 확실하고 일하지 못했을 때도 살 수 있도록 사회체계를 갖추어놨다. 때문에 국민은 국가에 불만은 제기하지 않는다. 

 그럼 다른 관점에서 두 세계를 보도록 하자. 유토피아의 사람들은 자신이 유토피아에 산다는 사실을 알까? 반대로 디스토피아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디스토피아에 살다는 사실을 알까?

 유토피아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국가가 정말 이상향인지 아닌지 판단을 할 수 있다. 국가는 사람의 생각을 통제하지 않았고 때문에 사람들은 생각을 할 수 있다. 그 사회에서 모두가 옳은 생각만은 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사는 사회가 이상향이 아니라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누구아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통해 가치관을 확립하는데 자라온 환경이 '이성적인 판단만을 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이성적인 생각만 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힘들면 이 자료를 보자. 한국에서 금지되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말하는 행동들이 다른 사회에 가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토피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반대로 디스토피아에서 사는 사람은 자신이 사는 사회가 유토피아, 즉 이상향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곳에 있는 사회는 지속적으로 국민의 생각에 관여를 하고 사회에서 주입하는 생각이 옳다고 믿게 만들기 때문이다. 알기쉬운 예로 북한에서 실시하는 사상교육이 바로 그것이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디스토피아에 사는 사람은 사회가 가르쳐준 대로 자신이 사는 사회가 세계 최고이고 자신이 살면서 경험하는 것은 다른 사회에서는 누리지 못하는 행복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유토피아에 사는 사람은 자신이 사는 곳이 당연하다고 느끼지만 디스토피아에 사는 사람은 자신이 이상향에 산다고 느끼는 아이러니함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대한 관점이 '사회가 가진 절대적 기준과 가치'에 따라 생각해봤다. 사회가 가지는 절대적인 기준으로는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를 나누기 힘들다는 점을 알았으니 이제 '상대적으로 생기는 사회의 가치'를 통해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나눠보자.

 요새 유행하는 말 중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있다. 지옥의 헬(Hell)과 시민의식과 정부가 조선시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의미를 합친 말이다. 비슷한 신조어로 둠조선(Doom조선), 개한민국 등이 있다. 이 단어는 다른 나라가 외부로 보여주는 훌륭함과 자신이 겪는 대한민국의 참담함이 비교되어 만들어진 단어라고 생각한다. 저건 굴욕적인 단어가 만들어질 정도의 국가지만 대한민국도 치안, 보건 등과 같은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이고 다른 나라에서 벤치마킹을 하려 한다. 위에 있는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같은 나라라 할지라도 무보수 인턴 등 사회 시스템적으로 부족한 부분들이 있다. 보고싶은 모습만 보기에 그곳이 유토피아이고 이곳이 디스토피아로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회가 진짜 '이상향'일까? 이것에 대한 답은 없다. 각자 살아온 삶과 환경이 다르고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가난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개인의 문제기 때문에 도와주면 안된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사회가 잘못하여 생긴 문제다. 복지를 늘려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둘 다 옳지만 사회는 저것 중 하나만 적용해야 한다. 흑백이 아닌 회색으로 접근하더라도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라는 단어를 만든 과정을 살펴보면 단어의 뜻 자체는 그리스어 οὐ(not) + τόπος(place)의 합성어로 번역하면 '없는 곳'이 된다. 토마스 모어는 이상향을 논하는 것은 부질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게 아닐까? 사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가 이상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친다.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Utopia